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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위원 이지형

 

ⓒ 김진영 프리랜서 다큐멘터리PD(이화여대 졸업생)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초래한 원인을 어느 한 가지로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대통령 한 사람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는 시스템 자체를 원인 중 하나로 짚을 수 있을 것이다. 종래의 수직적 · 권위적 정치체계는 소위 ‘제왕적 대통령’을 가능하게 한 원인 중 하나다. 대선후보들이 너도나도 개헌 공약을 들고나온 이유는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대학에도 비슷한 자리가 있다. 총장이다. 총장은 학칙 개정안 발의, 예 결산 심의, 학사 업무를 통틀어 학교 운영 전반의 광범위한 권한을 가진다. 그 권한을 견제할 수 있는 기구는 없다. 나라의 대표인 대통령은 우리 손으로 직접 뽑았는데, 학교의 대표인 총장은 과연 누가 뽑는 걸까. 대학교 총장이 선출되는 과정을 들여다보자.

 

 

 

다시 대학가에 불어오는 민주화 바람

서울대는 2011년 총장 선출 방식을 직선제에서 간선제로 변경했다. 국립대로서는 처음으로 이루어진 법인화의 일환이었다. 전체 교수의 무작위 10%로 구성된 정책평가단의 평가를 거쳐 후보가 3명으로 추려지면, 이사회가 이 중 한 명을 선임한다. 정책평가 결과가 이사회에 전달되기는 하지만, 이사회가 이를 따라야 할 의무는 없다. 2014년 간선제 전환 이후 처음 이뤄진 총장 선거에서 정책평가단의 평가 결과는 오세정 후보가 1위, 성낙인 후보가 2위였다. 그러나 이사회는 교수들의 정책평가를 뒤집고 2위였던 성낙인 후보를 총장으로 선택한다.

ⓒ 연합뉴스

 

일각에서는 청와대 내정설이 흘러나왔다. 근거는 성낙인 총장이 영남대 교원(1981-1999)으로 재직했던 과거 이력이다. 당시 이사장(1980-1988)이었던 박근혜 대통령과 연이 닿은 것 아니겠냐는 이야기였다.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2014년 6월 15일 업무일지에서는 ‘서울대 총장 逆任(역임, 거슬러 임명함)’이라는 메모가 발견되었다.[1] 메모가 쓰인 날짜는 서울대 이사회의 총장 투표가 열리기 4일 전이다.

석연치 않은 과정 끝에 성 총장이 선임된 지 2년 뒤인 2016년, 서울대는 커다란 학내분규에 휩싸인다. 법인화 이후 중단되었던 시흥시와의 캠퍼스설립 협약이 체결된 것이다. 학내 구성원과 어떤 논의도 없이 학교본부 단독으로 결정된 일이었다. 학생들은 본관을 점거하며 반대했다. 학교는 물러서지 않았다. 대신 교직원 400여 명과 물대포를 동반한 강제진압으로 응수했다. 학교의 폭력적 대응에 분노한 학부생 5,000명의 연서명이 이어졌다. 학생들은 ‘2등 총장’, ‘박근혜 정권이 간택한 총장’ 운운하며 총장 사퇴를 외쳤다.

성낙인 총장은 반복되는 정통성 시비를 차단하겠다며 총장선출제도 개정안을 들고 나왔다. 전체 교수의 무작위 10%가 정책평가에 참여하던 기존 제도를 교수 전원이 참석하는 형태로 변경하는 내용이었다. 보다 직선제 형태에 가까워진 셈이다. 하지만 성낙인 총장의 임기는 2018년까지 아직 1년 남은 상태다. 학생들의 총장 퇴진 요구는 더욱 거세졌다. 싸움은 지금 이 순간도 계속되고 있다.

본관(행정관)을 점거한 학생들을 끌어내기 위해 서울대학교 직원들이 물대포를 쏘고 있다. ⓒ 대학신문

이화여대는 1996년 이후 총장 간선제를 유지해 왔다. 최경희 총장은 이화여대 최초의 이공계 출신 총장 타이틀을 달고 2014년 8월 이사회에 의해 선출된다. 취임 후 교육부의 재정지원사업을 싹쓸이[2]하는 업적을 달성한 최경희 총장은 학교의 ‘발전’을 진두지휘할 적임자로 인정받는 듯 보였다.

2년 뒤 다이너마이트가 터진다. 교육부의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 참여를 위해 이화여대 본부는 2016년 7월 ‘미래라이프대학’이라는 이름의 단과대 신설 계획을 발표한다. 총학생회는 ‘학문 탐구라는 대학의 목적을 퇴색시킨다’ ‘교육의 현장인 대학교를 학위장사에 이용한다’라며 반대했다. 200여 명의 학생이 본관 점거 농성에 들어가자, 최경희 총장은 서대문경찰서에 1,600명의 병력을 요청해 강제진압에 나섰다. 교육자로서 해서는 안 될 결정이었다. 진압 과정에서 경찰과 학생의 몸싸움이 벌어졌고, 시위에 참여했던 학생 100여 명은 트라우마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사태는 일파만파 커졌다. 재학생과 졸업생 1만여 명(경찰 추산 3,500명)[3]의 학생이 본관을 에워쌌다. 때마침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며 정유라 학생에 대한 특혜 의혹이 제기되자, 이번에는 교수들까지 가세해 총장 퇴진을 외쳤다. 국정감사 이후 진행된 3차 시위에는 교수 200여 명과 학생 5,000여 명이 집회에 참여했다.[4]

교수, 학생, 동문의 거듭된 사퇴 요구에 묵묵부답이던 최경희 총장은 2016년 10월 결국 사퇴한다. ‘정유라에 대한 특혜는 없었다’라는 변명과 함께였다. 총장이 공석이 되자 다음 이슈는 새로운 총장을 뽑는 문제였다. 교수비대위는 ‘작금의 사태가 발생한 근본적 원인은 사실상 재단이 지명하는 인물이 총장으로 선출되는 의사결정 구조 때문’이라며 총장선출방식을 정조준했다.

 

본관을 점거했던 이화여대 학생들이 경찰의 손에 끌려 나오고 있다. ⓒ 위키트리

 

끝없는 총장 선거권 쟁탈전

대학교 총장을 선출하는 방법은 거칠게 요약해서 세 가지로 나뉜다. 직선제는 교수 전원이 참여해 직접 총장을 선출한다. 간선제는 교수 등 대표자로 구성된 총장추천위원회가 후보를 선출하면 이사회가 임명하는 방식이다. 임명제는 말 그대로 정부 혹은 이사회가 원하는 인물을 임명하는 방식이다.

군부 독재 시기 대학 총장은 모두 임명제로 선임되었다. 국립대의 경우 정부가 임명하고, 사립은 재단 이사회가 임명했다. 변화가 일어난 것은 1987년 이후다. 거센 민주화 열풍이 대학사회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종래의 권위주의적 임명 대신, 교수 전원의 직접선거가 이루어졌다. 정부와 재단법인은 선거 결과에 동의하는 형식적인 임명절차만 수행할 뿐이었다. 국립대학으로는 목포대가 1987년에, 사립대학으로는 연세대가 1988년에 처음으로 직선제를 통해 총장을 선출했다. 총장 직선제는 대학사회에 빠르게 전파되었고, 1996년에는 전체 사립대학의 44%가 총장직선제를 채택하기도 했다.[5]

그러나 2011년 이명박 정부가 직선제 폐지로 정책 방향을 틀면서 변곡점이 찾아온다. 교육과학기술부는 국·공립대에 간선제로 총장을 선출할 것을 권고했다. 학내 선거운동이 과열되고 각종 포퓰리즘 공약, 논공행상식 보직인사 등 직선제의 폐해가 우려된다는 이유였다. 간선제를 채택하는 대학은 재정사업과 대학구조개혁평가 등에서 가산점을 줬다. 실제로 서울시립대는 2016년 CK 사업 선정 평가에서 인천대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으나, 총장직선제를 유지했다는 이유로 가산점에서 순위가 엇갈리기도 했다. 1~2점 차이로 수십억 원의 지원금이 오가는 상황에서 대학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간선제를 채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20여 년간 대학가에 하나의 풍토로 자리 잡은 직선제를 없애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국립대를 중심으로 직선제가 폐지될 때마다 교수사회는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반발했다. 부산대가 대표적인 사례다. 2012년 직선제를 통해 선출된 김기섭 총장이 ‘직선제를 수호하겠다’라는 공약을 뒤집고 간선제 전환을 감행하자, 교수들은 천막농성과 단식투쟁으로 반대했다.

결국, 국어국문학과 고현철 교수가 본관 4층 테라스에서 몸을 던졌다. ‘직선제는 대학 민주주의 수호의 최후 보루’, ‘희생이 필요하다면 감당하겠다’라는 유서를 남긴 채였다. 대학본부는 그제야 뜻을 굽혔다. 9개월 뒤 부산대는 전국 38개 국·공립대 중 유일하게 교직원 직접투표로 총장을 뽑는 대학이 되었다. 2012년부터 삼 년 가까이 끌어온 직선제 쟁취 투쟁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87년 민주화와 함께 직선제 쟁취, 직선제에서 간선제로 전환, 그리고 다시 직선제 열풍. 총장 선출 방식을 둘러싼 싸움의 역사는 수많은 대학에서 반복됐다. 교수와 재단법인, 또는 교수와 정부가 총장 선출 권한을 두고 벌이는 쟁탈전의 연속이었다. 그 오래된 싸움 속에서 잊힌 존재가 있다. 바로 학생이다.

학생들은 학교의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대학 구성원이다. 건물이 지어지고 또 철거되고, 수업이 생기고 또 줄어들고, 학과가 통폐합되거나 정원이 증감하는 일, 모두 총장의 이름 아래 결정되는 일이다. 누가 총장이 되는지에 따라 학생의 수업권을 비롯한 제반 사항 모두가 좌지우지된다. 그 모든 변화는 학생들의 학교생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물론 학생만 중요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수적으로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구성원인 만큼, 학생은 학교의 일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총장 자리를 두고 직선제냐 간선제냐 싸워 온 지난 역사가 지닌 한계는, 바로 폭넓은 대학 구성원의 의견을 듣지 못했다는 점이다.

 

 

 

중앙대 구조개혁 드라이브, 불통의 역사

중앙대는 2009년까지 교수 전원의 직접선거로 총장을 선출해 왔다. 2009년 두산은 중앙대 인수와 동시에 총장 직선제를 폐지하고 재단 임명제로 변경했다. 당시 총장이었던 박범훈 총장을 연임시키는 조건이었다. 2005년 선출 당시에는 교수사회의 지지를 받고 당선된 박범훈 총장이지만, 이사회에 의해 임명된 이후에는 재단법인 뜻대로 학교를 개조하는 데 앞장섰다. 핵심은 구조조정이었다. 2010년 18개 단과대를 10개 단과대로 축소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안이 발표되었다. 교수와 학생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학교본부는 구조조정을 강행했다.

왼쪽부터 박용성 이사장, 안국신 13대 총장, 박범훈 12대 총장. ⓒ 중앙대학교

늘 그랬다. 학교는 학과개편안을 돌발 발표했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학과가 사라진다는 소식을 언론보도에서 처음 접했다. 모두가 반대했지만, 학교본부는 밀어붙였다. 2011년, 2013년의 구조조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15년 광역화 모집 사태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2009년 이후 이사회가 임명한 총장들은 모두 구조조정의 과업을 인계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1년 구조조정을 지휘한 안국신 총장은 2010년 서울캠퍼스 부총장에 재임하며 구조조정 총괄위원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현 총장인 김창수 총장 역시 2010년 기획관리본부장으로 재임하며 구조조정을 주도한 과거가 있다. 학교본부는 이미 지난 3월 전공개방모집제도를 발표하며 일방적인 소통 방식으로 교수 및 학생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불통의 역사가 매번 반복되는 배경에는 재단이 총장을 임명하는 제도가 있다. 총장은 학교의 대표자다. 이사회를 대변하는 자리가 아니다. 이사회와 학교 구성원의 중간에서 의견을 수렴하고 이사회의 권한을 견제하는 자리다. 그러나 재단법인이 주도하는 강도 높은 구조개혁을 위해서는 학교 운영의 전권을 이사회 중심으로 가져올 필요가 있었다. 두산이 중앙대를 인수하자마자 총장 직선제를 폐지한 것은 구조개혁을 위한 준비였던 셈이다.

총장 선출 제도가 재단 임명제로 바뀐 이후 총장들은 모두 ‘대학 발전’을 위한 학과 구조조정 드라이브에 열을 올렸다. 학교 구성원을 총괄하고 대표하는 자리로서의 총장이 아닌, 재단법인의 뜻에 따라 학사 행정을 주물렀다. 학교본부의 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학내 구성원들과 소통하는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재단 임명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학내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5년 교수협의회가 교수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274명의 응답자 중 77.7%가 현행 총장선출제는 학문적 역량, 도덕성, 존경, 민주성 등의 조건을 갖춘 총장을 선출하는 방식이 아니라고 답했다. 뒤이어 중앙대학교의 총장 선출방식으로 가장 바람직한 방법을 묻는 질문에 대해 59.1%가 총장추대위원회를 구성하는 간선제 방식을, 39.8%는 직선제 방식을 택했다. 반면 현 방식대로 법인이 직접 임명하는 것을 선호한 응답은 1.1%에 불과했다.[6] 교수협의회는 “현재의 행정체제에 대한 교수들의 불신이 심각한 수준이며, 이의 해결을 위해서는 새로운 총장 선출 제도의 도입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교수협의회가 말하는 ‘새로운 총장 선출 제도’에서 학생들은 여전히 배제되어 있었다.

 

직선제냐 간선제냐’를 넘어

많은 대학의 교수단체가 대학 자율성과 민주주의를 외치며 직선제를 요구했지만, 단지 직선제라고 해서 완벽한 것은 아니다. 직선제의 문제도 분명 존재한다. 주로 지적되는 점은 교수 간 파벌 형성과 논공행상식 보직인사 등이다. 중앙대도 과거 총장 직선제를 운용하던 시기 파벌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중앙대 교수협의회의 설문조사에서 반수 이상이 간선제를 택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터다.

대안은 더 다양한 학내 구성원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는 직선제인지 간선제인지 양자택일의 논의를 벗어나야 한다. 핵심은 선출 과정에 누가 참여했고 어떤 절차를 거치는지다. 그 형태는 직선제일 수도 있고 간선제일 수도 있다. 기존 총장 선출 제도의 빈틈을 채우기 위해서는 교수들만의 선거로 부족하다. 비단 학생뿐만 아니라 조교, 직원 등 학사 행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구성원의 참여가 필요하다. 기존 직선제의 폐해로 지적되던 문제 역시 학생과 직원의 참여를 확장하면 보완할 수 있다. 수십 년 같은 자리를 지키는 교수와 달리 학생은 유동적이며 조직화가 어려운 집단이다. 파벌 형성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2012년 개정된 교육공무원임용령에서는 국립대학의 총장추천위원회에 교원 외에도 직원, 재학생, 졸업생 등을 위원으로 포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10~50명으로 구성되는 위원회에 참여하는 학생위원은 1~2명 정도다. 사실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는 형식적 참여에 그친다. 게다가 본 법령의 대상이 아닌 사립대학의 경우 이마저도 기대하기 어렵다.

모든 대학은 공공성을 띠는 기관이다. 이는 사립대학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대학은 사회를 구성할 건강한 민주시민을 양성할 공익적 소임이 있다. 학교는 정치 사회화의 가장 중요한 기관이다. 학습 내용과 실제 경험의 일치 여부는 학생들의 정치적 태도에 영향을 미치며, 이 정치적 태도는 학교 외부 사회로 일반화된다. 즉 학교에서 행해지는 정치 사회화 과정이 다음 세대의 정치 문화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러나 중등교육의 모든 것이 대학 입시에 집중된 현실에서 청소년들은 민주주의를 교육받지 못한다. 정치적 참여를 교육하고 민주 시민을 양성하는 역할은 대학의 몫인 셈이다. 학교의 대표인 총장을 뽑는 과정에 참여하는 일은 대학이 행해야 하는 정치 교육의 일환이다.

ⓒ 포커스뉴스

다시 이화여대로 돌아와 보자. 교수비대위가 기존의 총장 선출 방식을 비판하며 대안으로 내놓은 것은 교수 100(87%) 직원 10(8.7%) 학생 5(4.3%)의 반영비율로 이뤄진 직선제 형태다. 반면 총학생회는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며 교수 33% 직원 33% 학생 33%의 동등한 반영 비율을 요구했다. 둘의 간극은 컸다.

합의점을 찾기 위해 교수, 직원, 학생, 동창으로 구성되는 4자 협의체가 구성되었다. 두 달간 지루한 줄다리기가 계속되었다. 교수 측은 80% 아래로는 양보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직원노조는 15%를, 학생 측은 25%, 동창 측은 3%를 각각 하한선으로 제시했다. 4월 10일까지 총 14차례 회의가 진행되었으나, 협의체는 타협점을 찾지 못한 채 제자리였다. 선거를 더 지체할 수는 없었다. 결국, 장명수 이사장은 “선거권 비율에 대해서는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해 더 이상 논의할 실효성이 없다”라며 총장 선출안을 최종 의결한다. 이사회가 의결한 선거권 비율은 교수 100(77.5%) : 직원 15.5(12%) : 학생 11(8.5%) : 동창 2.6(2%)등이다.

총장 사퇴를 이뤄낸 데는 학생들의 힘이 컸다. 처음 본관을 점거한 것도 학생이었고,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며 21개 중대 경찰 병력에 몸으로 저항한 것도 학생이었다. 1만여 명의 학생들은 핸드폰 조명을 켜고 학교를 행진하며 총장 퇴진을 외쳤다. 물론 최경희 총장의 사퇴가 학생들만의 공은 아니다. 적지 않은 동문이 가세했고, 교수들은 개교 이래 처음으로 직접 집회에 나섰다. 마지막으로 최순실 게이트의 불똥이 정유라 특혜 의혹으로 옮겨붙으며 야당과 언론의 집중포화가 쏟아진 것이 결정타였다. 그렇다고 학생들의 공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학생들의 싸움이 없었다면 총장의 사퇴도 없었다.

하지만 교수들은 직선제를 요구하면서도 반영 비율 80% 이상을 고집했다. 김성국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학생이 학교의 주인’이라는 학생들의 생각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총장 선출에서 학생이 교수와 같은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어렵다. 학생을 가르치는 일과 학문 연구를 동시에 하는 만큼 교수가 학생에 비해 학교에서 담당하는 구실이 크기 때문”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7]

물론 교수는 학교에서 가장 많은 역할을 담당한다. 강의와 연구뿐 아니라 보직 교수로서 학사 행정을 도맡기도 한다. 총장 선거의 피선거권을 갖는 집단도 교수다. 교수의 반영 비율이 높아야 한다는 주장은 일정 부분 타당하다. 다만 그것이 100대 5의 차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교수들의 목소리만 반영되는 직선제는 과거 총장 직선제가 한창이던 80년대의 방식이다. 87년의 민주주의와 2017년 촛불 이후의 민주주의가 다르듯이, 대학에서도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학생의 이해관계가 달린 사안이라면, 목소리도 그만큼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총장 선출 과정을 바꾼다고 만사형통은 아니다. 대학을 둘러싼 시대착오적 제도는 여전히 학생의 목소리를 틀어막고 있다. 사립학교법은 대학평의원회에 학생 참여를 보장하고 있지만, 대학평의원회가 의결권 없이 심의권만 가진 반쪽짜리로 남아 있는 이상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렵다. 교원 임용, 학칙 개정안 의결, 학장 임명 등의 굵직한 결정은 여전히 이사회의 권한이다. ‘총장만 바꾸면 된다’가 아니다. 대신 정부 또는 이사회와 학내구성원의 중간에서 균형을 맞추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총장 선출을 바라보아야 한다.

학생은 수동적으로 수업을 듣기만 하는 객체가 아니다. 학생은 엄연한 교육의 주체이며 학교의 주인이다. 이 당연한 명제를 교육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을 때 민주주의의 미래는 달라질 것이다. 대학에도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변화가 필요한 때다.

 

 

 

 

 

[1] 성낙인 총장은 이 메모에 대해 “‘選任선임’을 ‘逆任역임’으로 잘못 읽은 것”이라 해명했다.

[2]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실이 발표한 ‘2016년 교육부 소관 주요사업 재정지원현황’에 따르면, 이화여대는 박근혜 정부 들어 신설된 교육부 재정지원 사업(CK, PRIME, CORE, 평생교육단과대학, 여성공학인재양성, 고교정상화기여대학 지원사업 등 6개)에 모두 선정된 유일한 사립대학이다. 후일 이러한 성과는 모두 정유라 학생에 대한 특혜를 대가로 얻어낸 것임이 밝혀졌다.

[3] 이대학보. 2016년 8월 10일. “”언니 또 왔다”…총장 사퇴 요구 2차 시위”.

[4] 경향신문. 2016년 10월 19일. “이화여대 교수 200명 장외집회, 학생 5,000명 ‘스승의 은혜’ 불러 화답”.

[5] 표시열. 2001. “한국 대학총장 선임제도의 개선방향”. 대학교육, 1·2월호, 50-58.

[6] 중앙대학교 교수협의회. 2015년 12월 14일. “새로운 총장 선출 제도가 필요하다: 전체교수 여론 조사 결과를 알려드립니다.”.

[7] 주간동아. 2017년 3월 1일. “대학에 부는 총장 직선제 바람”.

학생을 위한 총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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